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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의학의 현대화, 세계화를 추구하는​한의과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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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국제교류수기] 중국약과대학 및 남경중의약대학 탐방

  • 한의과대학
  • 58
  • 2026-08-26

*지난 7월 12일부터 27일까지 있었던 중국 남경에서의 학생국제교류에 대한 본과 1학년 박준우 학생의 수기입니다. 그때의 경험을 생생하게 글로 남겨서 공유해 준 박준우 학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熱夏日記

장강 유역 3대 화로 남경을 걷다 남경중의대 및 중국약과대학교 탐방 수기

2026.07.12~2026.07.27

본과 1학년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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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7월은 유독 무덥게 느껴졌다. 전국 곳곳에서 40도를 웃도는 나날들이 기록되고 있다. 이런 뜨거운 여름에 보름 남짓 남경을 탐방한 나, 그리고 함께한 태준, 채원 누나의 마음 역시 탐방하는 내내 열정으로 타올랐다.

한의대 공부를 하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 봤으리라.

'다른 나라에서의 전통 의학은 어떤 식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어떤 방식으로 트레이닝을 받을까? 환자들의 인식은 어떨까? 우리가 임상에서 활용하는 침, 부항, 뜸과 같은 것들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가 배우는 원전, 본초학을 해외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배울까? 중국 근간의 고전 저서들은 당연히 읽어 봤겠지? 본초는 우리가 배우는 것과 똑같은 종류들일까?'

 너무나 궁금했다. 한의학의 세계화. 꼭 이런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위와 같이 평소 해 본 막연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확인해볼 기회가 있다면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예과 2년간 학교 주최 프로그램인 해외배낭연수에 열심히 참여해 보기도 했었다. 이를 통해 방문했던 나라들의 전통 의학의 형태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 나라 학생들이 실제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진로는 어떤 식으로 정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그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 물어볼 길이 없었다. 이때 알게 된 것이 중국약과대학교(CPU, China Pharmaceutical University) 여름 캠프였다. 옳거니, 세계 여러 나라 학생들과의 교류 기회가 있겠구나. 그리고 중의병원 임상에 대해 관찰해볼 기회가 생기겠구나. 평소 하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중국 캠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캠프가 질문에 대한 답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나에게 돌려줄 것이라는 사실을.

 한 가지 더, 나는 평소 중국에 대한 가벼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은 정말 매울 거야. 여행하기에는 별로일 것 같아. 공산 국가니까, 혹시나 위험하지는 않을까? 여행 전부터 쓰고 있었던 색안경이 깨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중국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색안경은, 아주 산산조각이 났다.

공항에서 태준이, 그리고 채원 누나를 만났다. 여행 시작부터 태풍 '바비'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제대로 뜰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다행히 결항 없이 제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7월의 중국은 정말이지 살인적으로 더웠다. 난징 기준으로 평균 35~38도를 웃도는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문제는 단순히 기온만이 아니었다. 습도가 정말 어마어마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옷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느낌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상하이도 다녀왔는데, 상하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았다. 오히려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 때문인지 체감상 더 후덥지근했던 것 같다. 그늘 밑에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걸 느끼며, 아 이래서 남경이 장강 유역 3대 화로 중 하나구나를 몸소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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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남경중의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 보겠다. 중의대 학생들과 처음 만난 순간은 참으로 기억에 남는다. 세 명이 마중을 나왔는데, 정말 더운 날이었음에도 우리를 맞이하러 나와 시원한 동방수엽(, 무가당 차)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고는 각각의 동방수엽이 어떤 맛인지, 어떨 때 마시면 좋은지를 신나게 설명해 주었다. 역시.. 중의대의 어린 신농들은 다르구나! 무가당 차를 종류별로 골라온 것도 養生의 일부인가! 이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차 대접 문화에 참으로 감동이었다.

학교 입구에서부터 들어오며 바라본 중의대 캠퍼스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선 학교가 정말 컸다. 중국답게 모든 것들이 큼직하고 거대했다. 공부할 맛 나겠는걸! 또한 건물들의 쓰임에 대해 물어보니 많은 건물들이 랩실로 쓰이는 듯했다. 학생들 모두가 ‘나 지난 학기에 저 건물에서 주로 실험했었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중국 대학생들은 연구, 실험을 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구나 싶었다. 이 많은 건물, 학생들이 모두 중의대에 소속된 것이라니. 후에 듣긴 했지만 중의대라고 해서 모두가 중의학이라는 획일화된 전공을 이수하는 것은 아니고,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틀 내에 세부 전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재활의학, 천연물, 중서의결합 등)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세부 전공별로 입학 커트라인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의학에 비중을 더 많이 두는 전공일수록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의학이 한국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의학계열 진학 커트라인이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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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대 학생식당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교수님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우선 함께 저녁을 먹었다.

"I'll have the same as yours!"

나와 태준이는 중의대 친구가 주문한 메뉴와 같은 것으로 시켰다. 현지 중의대생의 베스트 메뉴, 어찌 안 먹어볼 수 있겠는가. 부속, 내장을 이용한 두부면 국수와 납작만두가 인기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의 음식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전혀 맵지 않았고, 고수 향이 나는 시원한 국물과 적당한 기름기의 만두가 정말 조화롭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며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한 중의대 친구가 말하길, 중의대에는 본초 전체의 표본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과목이 따로 있다고 한다. 식물을 전초 그 자체로 말이다. 평소 약용부위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관찰해 왔기에, 본초를 전초로써 파악하고 이를 표본화하는 방식의 수업이 낯설게 느껴지긴 했으나, 전초 자체를 다루는 수업 과정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공부할 땐 더 헷갈리겠지? 땡시 시험을 전초로 보면 재밌겠군’과 같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친구는 식물에 참 관심이 많은 듯했다. 평소 자취방에서 식물을 여럿 키우는 취미가 있어 사진을 여럿 보여줬더니, 무척 흥미로웠는지 자기 고향인 쿤밍에 중국 최대 규모의 가든이 있다며 놀러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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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이후에는 다같이 가볍게 캠퍼스 투어를 한 후, 평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돌이켜보니 이 잠깐의 질의 시간이 2주간의 캠프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중 하나였다. 이야기 나누었던 것들 중 인상적이었던 것들 위주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우선 중의대는 인턴 생활이 필수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중의대 학부 과정은 보통 5년제로 운영되는데, 5년차에 인턴 생활을 해야 국가고시를 볼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국가고시 이후 전문의 과정 이수를 선택할 수 있는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학생 시절부터 실전 임상에서 차팅, 응급질환 배제 등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회의 다양성 때문인지, 이후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학생들 다수가 중의병원에서 일하며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국가고시 이후 개원의의 길을 밟지 않는가. 중국의 경우 오랫동안 임상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로컬에 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If you don’t have any background, it is hard for you to get trust from patients in a new clinic. Studying in the hospital is a good chance for new doctors to build the trust with patients. Just my opinion.”

또한 중국은 중의와 서의가 대립한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다. 물론 중국에 2주 남짓 머물며 그 실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남경중의대 내의 'Clinical Medicine of Chinese and Western Medicine'이라는 세부 전공명만 봐도 알 수 있듯 중국의 경우 임상에서 중의학과 서양의학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가 어떤 질환을 앓는지에 따라 중의학적 접근이 옳을지, 양방의 접근이 옳을지, 혹은 두 방식을 겸하여 처방할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지극히 환자 중심의 접근이며, 치료의 방식에 있어서 방법론의 본질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고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중국은 공식적인 유급 제도는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졸업 유예는 가능하다고 한다.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게 되면, 다시 그 과목을 이수해야 하며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시험은 어떤지 물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보는 시기는 우리와 크게 차이 없는 것 같았다. 허나 수시고사라는 것의 존재는 잘 모르는지, 시험을 여러 번 본다는 이야기에 좀 놀란 눈치였다.

"Professor never told us hints of exams.. They always tell us that everything is important"

너네들도 참된 공부를 하고 있구나! 모든 것이 중요하니, 당연히 전 범위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네. 동기들과 시험 전 자주 나눴던 대화를, 중국 와서도 이들과 나누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They give us just a ten-minute break. How are we supposed to get from one lecture building to another? It's absolutely the worst on rainy days."

 이 이야기를 나눌 땐 갑자기 우쭐해졌다. 강의실 옮길 필요 없이 매일 편하게 수업 듣는 우리들. 매일 같은 곳에서 수업을 들으니 가끔은 지겹다고 생각했는데,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 참이었다. 이런 날씨에 이동 자주 하면 정말 귀찮겠군. 실제로 중국 대학생들의 경우 잦은 강의실 이동과 무더운 날씨에 대한 대책으로 항상 뎬동처(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숙사 통금 시간. 서로의 통금 시간으로 인해 우리는 10시 무렵 헤어졌다. 아직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기에, 못다한 이야기는 위챗을 통해 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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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약과대학교(CPU)에서는 조금 더 거시적인 것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2주간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나 실습 시간, 그리고 병원 투어 시간이었다. 각각의 실습 시간과 병원 투어 속 인상적이었던 것들 위주로 내용을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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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 이론 및 실습의 내용은 우리가 한의학원론, 경혈학 시간에 배웠던 것과 거의 동일했다. 차이점이라면 소독약? 한국은 일회용 알코올 스왑이 보편화되어 있는 반면, 중국은 포비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사용하는 소독약이 왜 다를까? 알코올은 포비돈에 비해 즉각적으로 증발하며 빠른 소독이 가능하니까, 우리나라처럼 빠른 환자 회전율을 생각해볼 때 알코올이 조금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 침습도에 따라 감염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포비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위 강의사진의 경우 삼릉침(三稜鍼)을 이용한 척택(尺澤) 부근의 정맥사혈을 하는 장면이다. 심한 어혈이나 열독이 있을 때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정도의 침습도만 봐도 알코올보다는 수술할 때 사용하는 것처럼 포비돈을 바르는 게 나아 보였다. 다만 중의병원 투어 때 레지던트 선생님께 침을 맞을 기회가 있었는데 간단한 자침을 할 때에도 포비돈을 혈자리 위에 모두 바른 후 자침을 해 주셨다. 아무래도 중국에서는 포비돈이 조금 더 보편적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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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의 사용 양상은 한국과는 매우 달랐다. 물론 중국에서도 일회용 부항을 사용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부항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종류는 두 가지, 대나무 부항과 도자기 혹은 유리로 된 항아리형 부항컵이었다. 왜 이런 전통적인 부항을 고집할까? 혹은 다회용의 부항을 유지할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을까? 부항을 재사용하려면 꽤나 일이 귀찮아질 것 같은데? 불을 이용해 음압을 만들면 분명 화재의 리스크도 있을 텐데. 들어보니, 불을 이용하여 음압을 형성하면 일회용 부항에 비해 補하는 효과가 좀 더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중의병원 정도의 인프라에서는 오토클레이브가 잘 구비되어 있어, 재사용에 대한 리스크가 낮다고 한다.

옆에서 나이지리아 친구에게 부항을 놓는 것을 지켜보니, 능숙한 손놀림으로 불이 붙은 솜을 넣었다 빼는 시간이 정말 찰나였다. 오히려 일회용 부항보다도 음압의 세기를 손으로 직접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화재 리스크보다도, 시술자의 숙련도만 뒷받침된다면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맞춰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이 전통적인 방식이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효율보다 숙련의 가치를 더 쳐주는 문화랄까.

근데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병원 실습 때 선생님께 들었는데, 예전에 인턴 생활 하시던 중 불부항을 쓰다가 침대에 불이 붙은 적이 있으시다고 한다. 그것도 당황한 건 오히려 선생님 쪽이었고, 침대에 누워계시던 할머니 환자분께서 훨씬 침착하게 손으로 휙휙 불을 꺼주시고는 쉬쉬하며 조용히 넘어가주셨다고… 이 병원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다. 그 사건 이후로 그 선생님은 불부항 쓰는 걸 은근히 꺼리신다고 하셨는데, 듣는 내내 웃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숙련의 가치를 높이 쳐주는 문화 이면에 이런 아찔한 리스크도 함께 공존하는구나 싶었다. 효율보다 숙련을 택한 병원이지만, 그 숙련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할 수만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웃프고도 정직한 증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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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투어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십이지지(十二支) 개념이었다. 시간별 장부배속에 따라 치료 시간대를 결정한다는, 한방생리학 시간에 이론으로만 배웠던 것들이 실제 임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오전엔 이 경락, 오후엔 저 경락 하는 식으로 스케줄이 짜여 있는 걸 보며, 책에서 보았던 것들이 실제로 임상에서 쓰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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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투어 중에는 마침 무릎이 조금 안 좋았던 참이라, 레지던트 선생님께 침을 맞을 기회도 있었다. 자침하시는 혈자리들을 보며 내가 경혈학 시간에 배웠던 혈자리들과 하나하나 비교해 보게 되었다. 우선 배웠던 것과 실제 임상에서 잡는 혈자리가 일치하는 걸 확인하면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국경을 넘어서도 통하는구나. 평소 무릎 굴신에 어려움이 있고, 꿇어 앉을 때 무릎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고 증상을 설명해 드렸는데, 침을 놓은 위치를 보니 삼음교, 족삼리, 음릉천, 양릉천, 양구, 혈해였다. 다음에도 비슷한 증상이 느껴질 때, 혹은 주변에 무릎 통증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활용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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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습 시간마다 놀랐던 것 하나. 글로벌 학생들은 왜 이렇게 한의학적 치료에 오픈 마인드일까? 그저 신기해서 맞아보겠다는 건가 싶었는데, 실습한다고만 하면 다들 서로 하겠다고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앞서 내가 무릎에 침을 맞았을 때도, 다들 내 득기감이 궁금한지 자꾸만 질문을 해 댔다. 아프진 않냐, 나은 느낌이 드냐, 안 무섭냐 등.. 침이든 부항이든 뭐든, 낯선 치료법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일단 몸으로 부딪혀보려는 그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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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설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약대 캠퍼스 투어 중 제약회사 한 켠에 마련되어 있던 이 진단 기기를 보고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다. 위챗을 통해 간단한 인적사항 기입 후, 두 번째 화면과 같이 혀를 내밀고 있으면 우측 사진처럼 중국의 체질론에 맞게 환자 고유 체질 분석이 가능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얼굴빛을 스캔해 데이터로 보여주는 면진기, 맥의 촌관척 파형을 그래프로 뽑아주는 맥진기, 그리고 정확한 자침 각도와 깊이를 데이터화하여 진단, 연습할 수 있는 자침 실습기까지. 손끝의 감각, 의사의 망진으로 주관적 진단을 해왔던 것들이 눈앞에서 수치화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AI 기반의 빅데이터를 통해 정량화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AI 투자는 정말 상상 이상이었고, 이걸 중의학 진단에까지 접목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날로그와 완전한 디지털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걸까? 진단이 AI화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자침 실습기와 같은 것들은, 기초한의학을 수련하는 과정에서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표준화 된 기준으로 스스로의 자침 각도와 깊이를 확인하고 교정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일이니까.

다만 표준화라는 이야기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어쨌든 한의학이 도제식 학문의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중국의 AI 투자와 빅데이터 확보 능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산발적으로 쏟아져 출간된 여러 지식들과 주장을 어떻게든 하나로 모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동시에, 완전한 표준화에 대한 두려움도 든다. 사람마다 다른 체질과 증상을, 정말 하나의 기준으로 다 담아낼 수 있을까? 도제식 학문이 갖는 유연함과 스승의 직관이, 표준화라는 이름 아래 지워지진 않을까. 정답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질문을 품고 왔다는 것 자체가 이번 캠프의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 경험들을 되새기며 중국의 의료 상황을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허나 분명 배울 점은 있을 것이다.

AI에 있어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주객이 전도되어 모든 걸 AI에 의존해서 진단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AI를 통해 빅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아나가는 방식으로, 한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조금 더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가시화된다면, 환자를 설득하는 힘도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지 않을까? ‘설명 가능한 치료’가 얼마나 강점이 있는데!

그리고 이 모든 걸 겪으며 중국에 대한 내 인식도 참 많이 바뀌었다. 코끼리 우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만지고는, 다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기둥 같다 하고, 코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뱀 같다 하고, 저마다 자기가 만진 한 부분만 가지고 코끼리 전체를 안다고 우기는 그 이야기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딱 그 꼴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한 번도 제대로 만져본 적 없으면서, 매운 음식, 위험한 나라라는 딱 한 뼘짜리 인상만으로 중국 전체를 다 안다고 단정해버렸다. 위험하진 않을지 걱정도 참 많이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다 괜한 걱정이었다. 보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많은 부분을 만져본 느낌이다. 물론 이걸로 중국이라는 코끼리를 온전히 다 만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가 아직 만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걸 안다는 것 만으로도, 이전의 나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한의학과 양의학이 놓인 상황도 이 코끼리 우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서로가 자기한테 필요한 면, 자기가 보고 싶은 면 만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정작 상대가 만지고 있는 부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학문적으로 조금 더 소통하고, 서로에게 열린 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더 넓게 보자고!

 이건 비단 한의학과 양의학 사이의 이야기 만은 아닐 것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입견과 편견이 난무하지만, 그럴수록 대상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선입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테니까. 다만 이번 여름, 남경의 뜨거운 화로 속에서 배운 것처럼,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색안경을 벗어볼 용기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의학과 양의학 사이에서도, 전통과 AI 사이에서도, 그리고 앞으로 만날 수많은 낯선 것들 앞에서도. 더 넓게 보자고. 이 다짐 하나만큼은, 뜨거웠던 이번 여름과 함께 마음 깊이 새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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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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